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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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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 양암정 양암정은 서담 홍위(洪瑋)가 광해군 4년(1612)에 학우들과 함께 자연을 즐기면서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고종 5년(1868)에 없어지자 고종 25년(1888) 옛터에 다시 지었다. 경치가 수려한 위천 옆 절벽 끝에 자리해 위천 주위 남쪽 방향의 산과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로는 출입문과 정자가 있고, 주위는 담장을 쌓아 돌렸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오른편에 양암정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5칸이다. 중앙의 온돌방 1칸을 삼면으로 마루가 에워싸는 독특한 구성이다. 천연 암반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에는 둥근기둥,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에는 네모기둥을 구분해 세웠다. 문화관광과
구미 -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휴휴당부조묘 부조묘 건물은 조선조 문신 홍웅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1630년(인조 8) 경 현 위치(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다곡길 373-18)로 옮겨 중건하였으며 그 후 후손들에 의해 수차례 중수하였고, 1928년 다시 중건하였다. 산기슭의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토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휴휴당 부조묘비 왼쪽에 제청(祭廳)인 모원당(慕遠堂)이 있고, 모원당 뒤쪽 높은 지대에 사당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상주 - 도남서원 1606년(선조 39)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되었으며 1676년(숙종 2)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797년(정조 21) 동·서재를 건립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하였고 이어 동·서재를 지었다. 2002년부터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도정사, 손학재, 민구재,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이 들어서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8월 하정일(下丁日)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남서원 [道南書院] 상주 경천섬 유원지
예천 - 용궁 만파루 척화비 용궁역앞 마을을 들어서면 만파루와 척화비가 있습니다. 거리는 약 50m정도 용궁읍내가 훤하게 전망좋은 위치에 만파루가 있어요. 용궁 척화비 이 비는 1866년(고종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8) 신미양요를 겪으며 전국의 주요 도로 등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비석 전면에는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이라 글을 새겼다. 비신은 귀접이 형태로 크기는 폭 45.5㎝, 높이 76㎝, 두께 15.5㎝이다. 원래 민가에 있던 것을 용궁중학교에서 찾아 용궁초등학교 동편 비석들이 있는 곳에 옮겼다가 1988년 만파루를 재건하면서 다른 비석들과 함께 그 옆으로 옮겼다. ​ 전국에 세워졌던 척화비 가운데 많은 수는 당시의 정세 변동에 따라 철거되었으며, 현전하는 상당수가 문화재로 지..
예천 - 용궁 향교 정종 2년(1400)에 불타 없어졌던 것을 중종 7년(1512)에 이곳에 복원했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타버렸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을, 인조 14년(1636)에 세심루(洗心樓)를 새로 지었다. 1863년 7월 하순에는 명륜당만을 중수하였고, 1873년 10월에 대성전을, 그해 11월 서재를 중수하였다. 그 후 동·서재는 허물어져 없던 것을, 동재만 근대에 와서 원상복구하였다. 1893년 8월에 다시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17년에 향교 건물 전반에 걸쳐 중수하였다. 1967년 6월에 보수하여 어느 정도의 면목을 새로이 했으나, 단청은 다시 칠하지 않았다. 1978년 8월에 국비로 대성전, 명륜당 등 건물 보수를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궁향교 [龍宮..
성주 - 향교 성주향교 대성전 과 명륜당 우리나라 문화재 보물로 지정 성주 읍내에 있습니다. 성주읍 예산리 교촌마을에 있는 성주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강당인 명륜당을 앞뒤로 배치하는 일반적인 향교와 달리 성주향교는 대성전을 오른쪽, 명륜당을 왼쪽에 배치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기와를 얹은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향교에서는 보기 드문 내외 2출목(二出目)의 다포 양식으로 가구를 짰다. 안에는 공자와 조선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여기에서 봄가을에 공자에게 제사를 드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지낸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당 양쪽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이다..
구미 - 매학정 이 지역은 본래 황기로의 조부 상정공 황필의 만년 휴양지이었으며, 황기로가 조부의 뜻을 받들어 정자를 짓고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매학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뒤에 공의 사위인 옥산(玉山) 이우(李瑀, 1542~1609)의 소유가 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1654년(효종 5)에 다시 지었다. 1862년(철종 13)에 화재로 다시 타버린 것을 다시 지었으며, 1970년 전면 중수하였다.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선시대의 지도에도 낙동강이 굽이 흐르는 옆에 매학정이 있다는 표시가 있습니다. 깊은 역사가 숨은곳이네요~
구미 - 지주중류비. 길제선생 묘소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지주중류비는 1983년 6월 2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吉冶隱先生-砥柱中流碑]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구미시 오태동에 있습니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며 멀리는 신비의산 천생산이 있습니다. 여기는 뒷쪽방향인데 잔디 관리가 잘되어 있네요. 아이들 자유롭게 뛰어놀아도 되겠습니다. 중국 황허 강의 탁류가 만물을 휩쓸어 가나 지주(砥柱)는 홀로 우뚝하여 모래와 돌, 큰 파도에도 흔들림 없이 한결같으니 길재도 시대의 흐름에 변하지 않고 이와 같았다 하여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저서에 『야은집(冶隱集)』과 언행록으로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길야은 선생과 지주중류비」 [吉冶隱先生-砥柱中流碑] (한국향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