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57) 썸네일형 리스트형 청송 - 찬경루 청송 - 찬경루 남원 - 광한루 남원 광한루 성주 - 한개마을 성주 한개마을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入鄕)하여 개척한 마을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이씨 (星山李氏) 집성마을이다. 17세기부터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 등의 이름난 큰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또한 마을의 전통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土石)담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잘 동화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마을이다. 김천 - 연화지 김천 연화지 봉황대벗꽃이 한창 입니다. 영동 -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1999년 9월 15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764년(영조 40)에 영조의 령으로 선조(宣祖) 때부터 영조(英祖) 때까지 덕수이씨 일가의 6대에 걸쳐 배출된 6명의 효자와 2명의 효부 2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6명의 효자는 학수, 탱, 만춘, 채, 복초, 종철이고 2명의 효부는 장씨, 김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永同 德水李氏 六世八孝旌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문(旌門)이란 조선시대에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세웠던 문으로 작설(綽楔)·홍문(紅門)·생정문(生旌門)이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기념물 1999년 9월 15일 덕수이씨참판공정철파종중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424-1번지 조선시대 유적건조.. 왜관 - 호국의 다리 왜관 호국의 다리 현재 공사중에있슴 고령 -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읍 뒷산에는 여러기의 대가야 고분군이 있으며 대가야박물관도함께 역사여행을하기에 매우좋은 유적지 입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대가야의 역사와 고분의 발굴현장을 그데로 재현되어 여러가지 유물과 장신구 등 많은 전시물품이 있습니다. 성주 - 사창서당 社倉書堂 ‘사창(社倉)’이라는 명칭은 서당이 있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서당이 있던 자리는 조선 중기 성주 지역의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49세 되던 해인 1591년(선조 24)에 서숙(書塾)을 지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정구는 마을의 이름이 주자(朱子)가 경영하였던 숭안(崇安)의 사창과 동일함에 주목하여 서숙을 짓고, 「새로 지은 사창에 쓰다[題社倉新構]」라는 시를 지었다. 후 서숙은 퇴락하여 한강대(寒岡臺)라는 이름으로 터만 남아 있었는데, 정구 제자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창서당(社倉書堂)을 건립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구미 - 성리학 역사관 구미의 학자의 기록관입니다. 구미 금오산에 있으며 구미 출생의 상세 기록과 역사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각각 요사채별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기록관에는 안내를 도와주는 해설가분도 계시고 구미와 고대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김천 - 봉황대 김천시 연화지에있는봉황대.옛 선비들이 풍류와 시를 읊고모여 학문을 닦은 장소라합니다.봄에는 연못둘레에 벗꽃으로감싸 장관을 이루는 연화지.그안에 봉황대 입니다.조선시대에 이곳으로 옮겼다하네요. 칠곡 - 가산산성 1971년 3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은 1700년(숙종 26), 중성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 객사·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砲樓)·장대(將臺) 등이 설치된 점으로 보아 행정적 목적보다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것 같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조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곡 가산산성 군위 - 양암정 양암정은 서담 홍위(洪瑋)가 광해군 4년(1612)에 학우들과 함께 자연을 즐기면서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고종 5년(1868)에 없어지자 고종 25년(1888) 옛터에 다시 지었다. 경치가 수려한 위천 옆 절벽 끝에 자리해 위천 주위 남쪽 방향의 산과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로는 출입문과 정자가 있고, 주위는 담장을 쌓아 돌렸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오른편에 양암정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5칸이다. 중앙의 온돌방 1칸을 삼면으로 마루가 에워싸는 독특한 구성이다. 천연 암반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에는 둥근기둥,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에는 네모기둥을 구분해 세웠다. 문화관광과 구미 -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휴휴당부조묘 부조묘 건물은 조선조 문신 홍웅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1630년(인조 8) 경 현 위치(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다곡길 373-18)로 옮겨 중건하였으며 그 후 후손들에 의해 수차례 중수하였고, 1928년 다시 중건하였다. 산기슭의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토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휴휴당 부조묘비 왼쪽에 제청(祭廳)인 모원당(慕遠堂)이 있고, 모원당 뒤쪽 높은 지대에 사당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김천 - 태화리 석조보살 입상 금릉태화리석조보살입상은 가막마을 맞은편 야산 중턱에 동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원래는 가막사지에 오층석탑과 함께 있었으나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1994년 4월 1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릉태화리석조보살입상은 눈·코·손 부분도 파손이 심하다. 봉긋 솟은 보발은 뒷머리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져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화관을 쓰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하며 입술은 일부가 깨어졌으나 도톰하다. 이마 위에서 귀까지 꽃을 장식했던 흔적이 보인다. 목은 짧고 어깨를 감싼 법의는 통견인데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불상의 높이는 9.. 예천 - 용궁 만파루 척화비 용궁역앞 마을을 들어서면 만파루와 척화비가 있습니다. 거리는 약 50m정도 용궁읍내가 훤하게 전망좋은 위치에 만파루가 있어요. 용궁 척화비 이 비는 1866년(고종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8) 신미양요를 겪으며 전국의 주요 도로 등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비석 전면에는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이라 글을 새겼다. 비신은 귀접이 형태로 크기는 폭 45.5㎝, 높이 76㎝, 두께 15.5㎝이다. 원래 민가에 있던 것을 용궁중학교에서 찾아 용궁초등학교 동편 비석들이 있는 곳에 옮겼다가 1988년 만파루를 재건하면서 다른 비석들과 함께 그 옆으로 옮겼다. 전국에 세워졌던 척화비 가운데 많은 수는 당시의 정세 변동에 따라 철거되었으며, 현전하는 상당수가 문화재로 지.. 김천 - 마애반가보살상 김천시 난함산과 문암봉 사이 계곡이 흐르는 골짜기.그 사이에 지금은 도로가 있습니다. 이 불상을 조각할 당시에는 첩첩산골 오솔길 이였을텐데 깊은 산골에 불상을 조각되어 현재에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조각되었다고 추정된다는데옛 선조의 혼이 담겨있는 조각상입니다. 매번 유적지를 가볼때마다 엄숙하고 마음을 경건함이 본연이며후대에 오래 보존되었으면 바렘입니다. 어느 절에 속하지 않으며 불자님들의 기도나 절을할 수있는 제단 시설이 없는게 특징이였고 무분별한 종교의 혼란시설이 없는게 좋았습니다. 별도 가림막 설치를 한다면 생각해보게 되네요.현재는 석축을 단단히 잘 쌓아 매우 안정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상단부에 약간의 안정적 보수가 필요해 보이네요. 천만년 오래도록 보존의 가치를 옛 선조들은 .. 이전 1 2 3 4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