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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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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 한개마을 성주  한개마을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入鄕)하여 개척한 마을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이씨 (星山李氏) 집성마을이다. 17세기부터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 등의 이름난 큰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또한 마을의 전통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土石)담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잘 동화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마을이다.
영동 -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1999년 9월 15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764년(영조 40)에 영조의 령으로 선조(宣祖) 때부터 영조(英祖) 때까지 덕수이씨 일가의 6대에 걸쳐 배출된 6명의 효자와 2명의 효부 2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6명의 효자는 학수, 탱, 만춘, 채, 복초, 종철이고 2명의 효부는 장씨, 김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永同 德水李氏 六世八孝旌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문(旌門)이란 조선시대에 충신·효자·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세웠던 문으로 작설(綽楔)·홍문(紅門)·생정문(生旌門)이라고도 한다. 충청북도 기념물 1999년 9월 15일 덕수이씨참판공정철파종중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424-1번지 조선시대 유적건조..
왜관 - 호국의 다리 왜관 호국의 다리 현재 공사중에있슴
고령 -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 박물관 대가야읍 뒷산에는 여러기의 대가야 고분군이 있으며 대가야박물관도함께 역사여행을하기에 매우좋은 유적지 입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대가야의 역사와 고분의 발굴현장을 그데로 재현되어 여러가지 유물과 장신구 등 많은 전시물품이 있습니다.
고령 - 향교 高靈鄕校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군의 서쪽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을 때 위패만을 옮겨 매안(埋安)하였다. 1676년 위패를 매안하였던 장소에 중건하였고, 1702년 현감 구문유(具文遊)가 당시의 향교 위치가 불길하다 하여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1917년 빈흥재(賓興齋)를 건립하였고, 1974년 교궁(校宮)을 전면 보수하였으며, 1983년 내삼문(內三門)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향교에는 사찰에서 사용한듯한 석재가 많이 있어서 향교를 이건하기 전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과 8칸의 명륜당 및 빈흥재·서무(西廡)·주사(廚舍)·내삼문·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성주 - 사창서당 社倉書堂 ‘사창(社倉)’이라는 명칭은 서당이 있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된다. 서당이 있던 자리는 조선 중기 성주 지역의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49세 되던 해인 1591년(선조 24)에 서숙(書塾)을 지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정구는 마을의 이름이 주자(朱子)가 경영하였던 숭안(崇安)의 사창과 동일함에 주목하여 서숙을 짓고, 「새로 지은 사창에 쓰다[題社倉新構]」라는 시를 지었다. 후 서숙은 퇴락하여 한강대(寒岡臺)라는 이름으로 터만 남아 있었는데, 정구 제자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창서당(社倉書堂)을 건립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구미 - 성리학 역사관 구미의 학자의 기록관입니다. 구미 금오산에 있으며 구미 출생의 상세 기록과 역사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각각 요사채별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기록관에는 안내를 도와주는 해설가분도 계시고 구미와 고대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칠곡 - 가산산성 1971년 3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은 1700년(숙종 26), 중성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 객사·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砲樓)·장대(將臺) 등이 설치된 점으로 보아 행정적 목적보다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것 같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조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곡 가산산성
군위 - 양암정 양암정은 서담 홍위(洪瑋)가 광해군 4년(1612)에 학우들과 함께 자연을 즐기면서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고종 5년(1868)에 없어지자 고종 25년(1888) 옛터에 다시 지었다. 경치가 수려한 위천 옆 절벽 끝에 자리해 위천 주위 남쪽 방향의 산과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로는 출입문과 정자가 있고, 주위는 담장을 쌓아 돌렸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오른편에 양암정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5칸이다. 중앙의 온돌방 1칸을 삼면으로 마루가 에워싸는 독특한 구성이다. 천연 암반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에는 둥근기둥,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에는 네모기둥을 구분해 세웠다. 문화관광과
구미 -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구미시 도개면에 있는 휴휴당부조묘 부조묘 건물은 조선조 문신 홍웅 선생을 모신 사당이다. 1630년(인조 8) 경 현 위치(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다곡길 373-18)로 옮겨 중건하였으며 그 후 후손들에 의해 수차례 중수하였고, 1928년 다시 중건하였다. 산기슭의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토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휴휴당 부조묘비 왼쪽에 제청(祭廳)인 모원당(慕遠堂)이 있고, 모원당 뒤쪽 높은 지대에 사당이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휴휴당 부조묘 [休休堂 不祧廟]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상주 - 도남서원 1606년(선조 39)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되었으며 1676년(숙종 2)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797년(정조 21) 동·서재를 건립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하였고 이어 동·서재를 지었다. 2002년부터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도정사, 손학재, 민구재,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이 들어서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8월 하정일(下丁日)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남서원 [道南書院] 상주 경천섬 유원지
예천 - 용궁 만파루 척화비 용궁역앞 마을을 들어서면 만파루와 척화비가 있습니다. 거리는 약 50m정도 용궁읍내가 훤하게 전망좋은 위치에 만파루가 있어요. 용궁 척화비 이 비는 1866년(고종3) 병인양요와 1871년(고종8) 신미양요를 겪으며 전국의 주요 도로 등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비석 전면에는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이라 글을 새겼다. 비신은 귀접이 형태로 크기는 폭 45.5㎝, 높이 76㎝, 두께 15.5㎝이다. 원래 민가에 있던 것을 용궁중학교에서 찾아 용궁초등학교 동편 비석들이 있는 곳에 옮겼다가 1988년 만파루를 재건하면서 다른 비석들과 함께 그 옆으로 옮겼다. ​ 전국에 세워졌던 척화비 가운데 많은 수는 당시의 정세 변동에 따라 철거되었으며, 현전하는 상당수가 문화재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