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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 임고서원 영천 임고서원
진해 군항제 경화역 진해 군항제 경화역 공원
청도 - 오일장 청도 오일장 서는날이라 가봤습니다. 청도에 볼거리도 많쵸.소싸움이 시작된곳 이기도 하며 요즘도 매년 축제처름 소 🐂 싸움 대회를 하나 본데저는 한번도 구경 못했습니다. 청도는감 으로도 유명합니다.감말랭이.감홍시.단감 등등 역시나 시장에 입구 들어서는데감이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네요.날씨도 따뜻하고사부작 ㅋ 구경하고 왔습니다. 아래 청도 오일장 사진 몇장
청송 - 사과축제 청송 - 사과축제10월29일
무주 - 대덕산 무풍 장터 무풍면 대덕산 장터 입니다. 한적한 시골마을 3일 8일 오일장 서는날구경 가봤습니다. 가을비 촉촉히 내리는 덕산재를 넘어맑은 산소향이 가득 뿜는 굽이굽이 산길 달리는 🚗 드라이브 어느새 가을은 깊어가는 풍경을 즐겨보는 사이금새 도착 했네요. 장날이라 하여주변에 혼잡하지 않을까 했는데전혀 예감이 달랐습니다. 이곳이 장터라며 신축 건축물을 마련하여 편리하게이용토록 했지만장날인데도 불구하고인구가 너무 없어서ㅜㅜ 상인은할머니 한분 할아버지 한분두분만이 시장 장터를 지키고 있네요. 무풍면 동네 구경 다녔습니다.도로변 상점 몇군데사진 보시겠습니다. 이 지역은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백두대간이 연결되는 민주지산이 있습니다.그의 봉우리 중에삼도봉이 있는데... 전문 등산객이 많이 찾는 유명소 입니다.저..
대구 - 동화사 동화사의 연혁을 전하는 사적기에는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 심지조사(心地祖師)가 중창을 하면서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그 이전에는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동화사(桐華寺)의 '동'(桐)은 오동나무 '동'자, '화'(華)는 "빛나다, 화려하다, 꽃"이라는 뜻이 있는데, 심지조사가 중창할 당시, 겨울인데도 절의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 '동화사'(桐華寺)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5] 또는 심지조사가 절을 지을 때 던진 오동나무 지팡이가 그대로 뿌리를 내려 자랐다는 전승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동화사의 다른 이름으로는 동수(桐藪) 및 동사(桐寺)가 확인된다. 《삼국유사》나 《고려사》, 팔공산 와요지에서 출토된 '桐藪彌勒..
경주 - 불국사 경주 불국사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불국사 홈페..
경주 - 골굴사 기림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다.​기림사는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사명이 개칭되기 전에는 임정사(林井寺)라고 하였으며,오종수(감로수, 화정수, 명안수, 오탁수, 장군수)의 설화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불국사보다 약 200년이 먼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들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처의 석굴을 파서 목조와가로 전실을 건조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골굴사 홈페이지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
경주 - 포석정. 첨성대 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월남리(月南里)라고 하..
경주 - 감포 고아라 해수욕장 국내 보기드문 몽돌 해수욕장 남해안의 몽돌 해수욕장과는 다르지만 나름 몽돌이 많이 있어파도에 쓸리는 몽돌 구르며 쓸리는 소리가 잼있습니다. 철지난 바다유난히 더웠든 여름 피서객들로 시끌 벅적한 소리는 없고 파도 소리만 들립니다. 고아라 캠핑장 감포 부두
영동 - 포도축제 영동 포도축제첫날이라 그닥 볼거리도..주차장도 멀고세계 국악대전 행사와 겹쳐 도시가혼란스러웠슴포도 각지역에서 생산된 포도 자랑에바쁩니다.옆에는 어린이교통안전 교육장이 있습니다.
선유도 호떡 부안 채석강물때가 맞지않아 먼곳에서 바라만보다가되돌아 옵니다.새만금 방조제선유도 가는길오래전 다녀온 선유도지금 호떡집이 나란히 있네요.연예인들도 다녀갔다며사진이 많네요.기름에 둥둥 뜹니다.25.9.9
부안 - 내소사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 스님이 창건했다. 내소사가 가장 번성했을 때에는 큰 절은 대소래사, 작은 절은 소소래사가 있었다.그 후로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내소사는 소소래사가 전해져온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불타 없어졌다가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선사가 중건했다.국가 지정 문화재《부안 내소사 동종》 (보물 제277호)《백지묵서묘법연화경》 (보물 제278호)《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보물 제291호)《부안 내소사 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268호)
부안 - 개암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인 개암사는 백제 무왕35년(634) 묘련왕사가 궁궐을 고쳐서 창건했다고 하며 그 후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와서 중창했으며, 고려 충숙왕 원년(1313)에는 원감국사가 이 절을 중창하면서 30여 동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 사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조선 태종 14년(1414) 선탄선사가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인조 17년(1636) 계효선사가 중창 사업을 시작했고, 효종 9년(1658) 밀영선사와 혜징선사가 대법당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재건되었다고 합니다.​*자료 출처: 부안 군청[출처] 부안 가볼만한 곳 - 변산반도 개암사|작성자 전북의 재발견
정읍 - 내장산 내장사 내장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중창(重創)되면서 영은사(靈隱寺)와 내장사로 병칭(竝稱)되다가 1938년의 중건(重建)으로부터 내장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특히 근대 학명 선사(鶴鳴 禪師, 1867~1929)가 사찰을 중수하고 자립 경제를 실천하면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51년 1월 12일에 불탄 뒤로 중건하지주15 못하다가, 1957년에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에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년∼1962년과 1974년∼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에 요..
장성 - 백양산 백양사 1996년 '고불총림(古佛叢林)'이란 이름으로 '총림'으로 지정되었으나, 2019년 11월 11일 조계종 중앙총회에서 총림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총림의 구성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1996년 총림 지정 당시 '서옹[3] 큰스님 생존 시에만 총림으로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지역 내에는 해제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고#도 있었으며, 사찰 홈페이지에도 '고불총림' 혹은 '5대 총림'이라고 소개한다.처음에는 백암사라고 하였다.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승려 여환이 창건하였다. 고려 덕종 3년(1034년)에 중연이 중창한 후 정토사라 개칭하였고, 조선 선조 7년(1574년) 환양선사(喚羊禪師)가 백양사라 이름을 바꾸었다.전설에 따르면, 환양선사가 절에 머물면서 영천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