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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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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 태화리 석조보살 입상 금릉태화리석조보살입상은 가막마을 맞은편 야산 중턱에 동남쪽을 향하여 서 있다. 원래는 가막사지에 오층석탑과 함께 있었으나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1994년 4월 1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금릉태화리석조보살입상은 눈·코·손 부분도 파손이 심하다. 봉긋 솟은 보발은 뒷머리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져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화관을 쓰고 있는 형태이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하며 입술은 일부가 깨어졌으나 도톰하다. 이마 위에서 귀까지 꽃을 장식했던 흔적이 보인다. 목은 짧고 어깨를 감싼 법의는 통견인데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불상의 높이는 9..
김천 - 대덕 지품천 대덕면 지품천김천에서 무주와 거창으로 가는 삼각길목 입니다.그 옆으로 흐르는 냇가가 흐르는데 물도 상당히 맑고 깨끗하고 좋습니다.  요즘 시골에 학생들이 몇명이나 될런지..
김천 - 세목골 김천을 가로 질러 낙동강까지 연결되는 감천그 길이가 상당히 멀고 김천의 주요 환경과 사람이 함께하는 생명의 줄기인 샘이다.멀리 고려나 조선시대를 거치며여러 명소가 감천을 주위로 자리잡아 그 기세를 알리고 있었다. 대표적인 지례향교를 지나면 방초정이 있고 그외 개령 선산까지 주요 기관과 행정 중심으로 명당이 되엇다. 그 생명줄기 시초가되는 감천의 발원지를 찾아 가봤지만지주와 협의가 되지않은 관계도 깊은 산속까지 찾아가지 못하고 돌아오는길에세목골이라는 마을을 만나 잠시 쉬어 가봅니다,.
김천 - 물소리 생태숲 경상북도 김천 삼도봉 자락에 위치한 물소리 생태 숲은 2017년 시민들을 위한 산림 휴식 공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맑은 부항천의 최상류가 흐르는 이곳은 예부터 계곡 물소리가 워낙 커서 옆 사람과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물소리 생태 숲’으로 이름 붙여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약 5만㎡의 생태 숲이 펼쳐져 있는데, 아이들이 걷기 좋은 완만한 산책길부터 제법 가파른 계단, 다양한 테마의 정원과 출렁다리 등이 설치돼 있다.미리 전화로 예약하면 유아들을 위한 숲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김천 물소리 생태숲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특히 출렁다리가 설치된 골짜기는 과거 산이 높아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탐방로 한쪽에는 화전민의 집도 복원해 특별한 볼거..
김천 - 마애반가보살상 김천시 난함산과 문암봉 사이 계곡이 흐르는 골짜기.그 사이에 지금은 도로가 있습니다. 이 불상을 조각할 당시에는 첩첩산골 오솔길 이였을텐데 깊은 산골에 불상을 조각되어 현재에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조각되었다고 추정된다는데옛 선조의 혼이 담겨있는 조각상입니다. 매번 유적지를 가볼때마다 엄숙하고 마음을 경건함이 본연이며후대에 오래 보존되었으면 바렘입니다.    어느 절에 속하지 않으며 불자님들의 기도나 절을할 수있는 제단 시설이 없는게 특징이였고 무분별한  종교의 혼란시설이 없는게 좋았습니다. 별도 가림막 설치를 한다면 생각해보게 되네요.현재는 석축을 단단히 잘 쌓아 매우 안정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상단부에 약간의 안정적 보수가 필요해 보이네요.  천만년 오래도록 보존의 가치를 옛 선조들은 ..
김천 - 세계 최대 장승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지...자료가 없네요. 굵은 나무는 어디서 구했으며 저 큰것을 어떻게 올라가 깎았는지.... 모하이 석상의 미스테리로 남아야 되는지엄청난 크기의 장승
김천 - 봉곡사 신라 시대 자장대덕이 도량을 개기하고 이어서 고려 초 도선국사가 중수했다고 전한다. 이보다 앞선 영휴대사의 기록인 「봉곡사사적」에는 922년(태조 5)에 도선국사가 개창한 것으로 되어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명부전은 「봉곡사중수사적」 및 상량문에 따르면 1690년(숙종 16)에 건립되었다고 하고 「명부전양간록」에는 1805년(순조 5) 송월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1867년(고종 4)에 중수를 거쳐 현 건물은 주지인 지우화상에 의해 다시 중건한 것이다. 동산실은 초창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고 1624년(인조 2)에 석희화상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그 이후 1717년(숙종 43)에 화재가 일어나 다시 중수되었고 1764년(영조 40)에 다시 중건된 기록이 있다. 현재의 건..
김천 - 섬계서원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1802년(순조 2년)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서원 철폐령으로 헐렀다가 1899년 강당을 새로 세웠다. 서원의 정침(正寢)인 세충사(世忠祠)에는 백촌 김문기 선생과 그의 맏아들 영월군수 여병재(如甁齋) 현석공(玄錫公)을 제사하고, 동별묘(東別廟)에는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남계(南溪) 서질(徐騭)을 배향한다.1959년 향유 이만영(李晩永)·박원동(朴元東)·이현돈(李鉉墩) 등이 전국 각지의 유림에 복원을 호소하고 본손인 김연직(金淵直)·김철규(金哲圭)가 세충사를 세웠지만 동별묘를 세우지 못하자 세충사를 가로막아 위패를 봉안하였다. 1995년 도비를 지원받아 1996년 11월에 동별묘를 세우..
김천 - 지례 향교 김천시 지례면 교리에있는 조선시대 향교입니다. 지례향교는 정확한 창건 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 명륜당은 1426년(세종 8)에 지례현감 동래인 정옹이 창건하였다.1485년(성종 16) 현감 김수문이 명륜당을 중건하였다.임진왜란 때 향교가 소실되었다가. 1690년(숙종 16)에 현감 유준광이 교궁을 중수하였고, 1774년(영조 50)에 사반루를 건립하였다.지례향교는 1913년 김산향교에 폐합되었다. 예전의 조선시대 건축양식으로 세워진 정자나 루 목조로 세웠는데 우리나라 어디든 비슷한 형태이네요. 문이 굳게 잠겨 있네요.안에 들여다 볼 수 가없습니다.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재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개방좀 해주시면 좋겠네요. 옆길로 올라가면 별채였는지예전에 제가 살든 집이랑 같은 구조여서 참으로 정겨웠..
김천 - 부항지서 망루 김천시 부항면에있는 망루 입니다.6.26 전쟁의 유적지로서 2008년10월1일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멀리서 다가갈때 망루위를보니 사람이 있네요.진짜인줄 착각할정도  1951년10월에 부항면 주민과 경찰이 북한군 유격대와 전투를 벌인 곳인데.망루는 멀리 바라 보도록 높은 위치에 있으며 방어선에 최대 역할을 합니다 망루 뒤로 돌아가보니 우물인줄 ㅎㅎ이곳 지하로 내려가면 망루로 연결되어있는 지하 통로입니다. 궁금해서 들여다 봤는데웬지...그리 길진 않지만 땅속이라 느낌은 별로였어요. 6.25 전 후로 곳곳에 망루가 있었는데동네 화재 감시역할로 교대 근무를 했어요.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망루에는 싸이렌 장비가 있어서 화재 또는 자정이 되면 시간을 알리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김천 - 과하천 김천 고성산 아래 조선 숙종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샘이였다고 전해집니다.이 샘은옛날에는 금지천(金之泉)이라 했는데 임진왜란 때의 명장 이여송이 이 샘에서 물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에 있는 과하천의 것과 물맛이 같다고 하여 이후로 과하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약수터 이지만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게 두껑을 덮어놨습니다.물한보금 마시지 못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뒤로 보이는 산아래 주변의 오래된 주택들이...  김천과하주, 700ml, 23% (도지정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1호 송강호 명인이 빚는 전통주400여년을 이어온 식품명인이 빚은 명술과하주는 조선초기부터 만들어져 왔으며 옛날 궁중의 공물로 진상하였다.또한 상류 사대부 집안의 귀빈접대용으로 즐겨 마시든 고급명주이다.(금릉승람에 소개)투명한 황..
김천 - 대신역 카페 대신역 카페지금은 폐역으로 카페로 변신한 대신역시골의 한적한 도시였지만 열차가 정차할때는 통학생들이 많았다. 여기가 고향인 사람들은 한번오면 그때의 추억이 뜨올라 다시 돌아오고싶지 않다는 말들도 한다.고향의 품이 아름다운곳. 내부모습은 보질않았지만 지나가는 열차소리와 함께 차한잔의 추억쌓기에도 좋은 장소라 보여지네요.구미와 김천 사이에 현재 운영을 하지않는 아포역과 대신역이 기차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