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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 김산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2] 김산향교는 조선 태조 1년(1392)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인조 12년(1634) 대성전과 명륜당을 다시 지었고 동재·서재, 동무·서무, 묘문(廟門) 등을 복원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그 당시에 지은 것이다.[2] 제사지내는 공간인 5칸의 대성전과 동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7칸의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2]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2]
김천 - 봉황대 김천시 연화지에있는 봉황대. 옛 선비들이 풍류와 시를 읊고 모여 학문을 닦은 장소라합니다. 봄에는 연못둘레에 벗꽃으로 감싸 장관을 이루는 연화지. 그안에 봉황대 입니다. 조선시대에 이곳으로 옮겼다하네요.
김천 - 김호중 소리길 김호중 소리길 고맙소 노래의 가수 김호중 그가 어릴적 이 길을 다닐때 크게 소리내며 다녔든 길 이라하여 소리길 이라 지정.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맙소. 이나이 되서도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대구 - 팔공산 파계사 804년(애장왕 5) 심지(心地)가 창건하고, 1605년(선조 38) 계관(戒寬)이 중창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현응(玄應)이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英祖)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聾山)과 함께 백일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淑嬪) 최씨에게 현몽하였으며,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租稅)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었다. 현존 당우로 2층..
칠곡 - 가산산성 1971년 3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산골짜기를 이용하여 쌓은 석성(石城)으로, 내성은 1640년(인조 18), 외성은 1700년(숙종 26), 중성은 1741년(영조 17) 각각 완성하였고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 객사·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砲樓)·장대(將臺) 등이 설치된 점으로 보아 행정적 목적보다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것 같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성을 쌓는 조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칠곡 가산산성
구미 - 송정동 가을 구미 송정동 철로변 자전거도로와 느티나무 숲을 조성하여 산책로가있다 박정희로 철로길은 과거 박정희대통령이 어린 시절 상모동에서 구미까지 20리(약 8km)길을 기찻길을 따라 통학하던 길이다. 구미 금오산의 금오정
추풍령 - 휴게소 경부고속도로 중심지역
군위 - 양암정 양암정은 서담 홍위(洪瑋)가 광해군 4년(1612)에 학우들과 함께 자연을 즐기면서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고종 5년(1868)에 없어지자 고종 25년(1888) 옛터에 다시 지었다. 경치가 수려한 위천 옆 절벽 끝에 자리해 위천 주위 남쪽 방향의 산과 넓은 들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로는 출입문과 정자가 있고, 주위는 담장을 쌓아 돌렸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오른편에 양암정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5칸이다. 중앙의 온돌방 1칸을 삼면으로 마루가 에워싸는 독특한 구성이다. 천연 암반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에는 둥근기둥, 자연석으로 된 주춧돌에는 네모기둥을 구분해 세웠다. 문화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