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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구미 - 봉한 삼강정려각

 

 

선산에서 고아지나 봉한 우측 도로변

논에 정려각이 있습니다. 

저도 여태 무관심 했었는데 오늘 첨 가봤습니다.

 

 

이 정려각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것으로

 마을 출신의 충신과, 효자, 열녀를 기리기위해 세운 정려각이라고 합니다.

 

 

초기 건립당시 삼강정려각 정면에 ‘백세청풍팔년고등(百世淸風八年孤燈)’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는데
오늘 가보니 없네요.

왜 없어졌는지 의문스럽네요.

 

 

야은 길제선생은 고려시대와 조선초의 학자로 구미의 자랑이구요.

고려가 망한후 조선이 들면서 낙향하여 채미정에 거처하신것으로 기록됨.

 

어릴적 할아버지랑 채미정 갔을때 여기있는 물건과 글들 잘 보고 배우고 아끼라 하셨습니다.^^

 

 

비문 [고려충신길제지려]

 

 

 

 

 

 

[효자홍문저작 배숙기지려]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부모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불욕(弗辱)을 실천하였으며,

부모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울면서 간(諫)하여 잘 판단하도록 하였다.

 

학문과 덕행을 쌓아 인격을 높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여 크게 이름을 떨쳐

존친(尊親)을 다한 공로로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그의 탁월한 효행을 만인의 사표(師表)가 되도록 하였다.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효자홍문저작배숙기지려]

원래는 비석이 있었는데 어느날 없어졌다네요.

문화재 주변에 CCTV가 거의 설치 되어있는데 여기는 없습니다.

 

 

 

 

 

열녀 약가 정려비

앞면에 ‘열녀조을생처약가정표(烈女趙乙生妻藥哥旌表)’라 각자하였으며

 

열녀 약가는 조을생(趙乙生)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 조을생이 자원하여 나가 싸우다가 왜구들에게 잡혀가자

그 날부터 남편이 돌아오기까지 8년을 하루같이 수절하며 지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1404년(태종 4) 열녀로 포상하였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으로 삼으니 많은 사람들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선시대 유교의 이념인 충(忠), 효(孝), 열(烈)의 정신을 지닌 사람이 한 마을 출신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고을의 수령이 그 정신을 선양(宣揚)하기 위하여 후세에 기록을 남기고

건조물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실에 그 의의가 높다.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 지역에 후세 유능한 인물이 계속 나오면 좋겠습니다.

구미의 영원한 자랑입니다. ^^

 

 

 

열녀 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