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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구미 - 경은 이맹전 유허비, 향랑노래비(향랑사당)

사육신과 생육신

 

 

유허비란!

옛 선조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알리고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두는 비로,

이 비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1392∼1480)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호는 경은으로,

야은 길재의 제자이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거창 지역에 현감으로 있을 때에는 어진 다스림을 베풀어 고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라는 호칭을 얻었다.

 

영천에는 이맹전의 용계서원 서당이 있습니다.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을 조짐이 보이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왔고,

단종이 영월 땅으로 유배되자 귀머거리에 장님 행세를 하며 단종을 그리워하다 89세로 생을 마치었다.

 

 

선조경은선생유허비각중건기

 

숙종 때에 선산부사를 지내던 김만증이 이곳에 비각과 함께 세워두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으나,

후손들에 의해 선생이 태어난 고장인 이곳 형곡 근린공원으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아래 지도에는

하구미면에 경은선생 유허비가 있으며

우측에는 열녀향랑 표시가 있습니다. (현재의 형곡동)

 

우측 상단에 금오산 지형이며 진남사와 보봉암 옥림사는 현재 없어졌네요.

대혜창은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든 창고였답니다.

 

조선시대에는 선산이 중심으로 행정관리를 하였고 선산에서 구미까지 50리라 기록이 있습니다.

선산 비봉산아래 하위지선생의 유허비가 있는데

이분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이로보아 고려와 조선시대를 전해 선산에는 학자와 유명한 분들이 많습니다. 

 

 

 

열녀향랑은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여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설화.

 

어려서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성정이 정숙했으나, 성질이 불량한 계모는 향랑을 박대하였다.

17세 때 같은 마을 임순천(林順天)의 아들 칠봉(七奉)의 아내가 되었는데, 칠봉은 그 때 나이가 14세였다.

칠봉은 성질이 포악하여 향랑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였다.

 

마침내 향랑은 죽기를 결심하고 길재선생을 기리는 지주중류비 아래있는 오태소에 (오태동) 몸을 던져

그때 꽃다운 나이 16세라고 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랑은 초녀(樵女)를 만나 사정을 말하고 자신이 지은 「산유화가(山有花歌)」를 가르쳐 준 다음,

자기의 결백을 입증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투신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天何高遠(천하고원)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

地何廣邈(지하광막)   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고.

天地雖大(천지수대)   하늘과 땅이 비록 크다고 하나

一身靡託(일신미탁)   이 한 몸 의탁할 곳 없다네.

寧投江水(영투강수)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서

葬於魚腹(장어어복)   물고기 배 속에 장사 지내리라.

 

 

 

 

 

지금의 형곡동 도서관 공원입니다.

 

 

지금의 형곡중학교 옆길로 약 150미터 올라가면

정열사가 있습니다.

 

나라의 충신이나 장군 무사의 유명한 분들만 봐왔는데

향랑의 애환이 서린 역사기록은 첨 봤습니다.

아래 지도에도 경은선생 유허비 옆에 열녀향랑이라 표시가 되어있네요.

개인의 기행자료라 역사의 기술이 많이 부족합니다.

자세한 내용이나 궁금한 사안은 문화재 기록청으로 상세 검색이용 부탁드립니다.

 

형곡동 공원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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